<p>어릴 때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손에 쥐고 자란 세대라고 해서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호주 초등학생들이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키보드 타이핑이나 파일 저장 같은 기본적인 컴퓨터 기술은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p> <p>두 자녀를 둔 학부모 에밀리 록우드 씨는 자신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와 지금의 교육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녀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컴퓨터 실습실에서 키보드 타이핑, 프레젠테이션 만들기, 파일 저장 방법 등을 전담 교사에게 체계적으로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디지털 학습이 역사, 과학, 영어 등 각 교과목 안에 녹아드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p> <p>록우드 씨는 "교사들이 모든 과목에 걸쳐 디지털 학습을 통합해야 한다는 건 무리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녀의 자녀들이 처음 컴퓨터 키보드를 사용했을 때, 타이핑 속도가 매우 느리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낯설어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를 "운전하는 법을 모르면서 뒷좌석에만 타고 다닌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기기를 주변에서 접하며 자랐다고 해서 그것을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p> <p>NSW주에서는 3학년부터 학생들이 자신의 기기를 학교에 가져올 수 있는 '개인 기기 지참(Bring Your Own Device)' 프로그램을 선택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저학년부터 교실에 디지털 기기가 도입되고 있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컴퓨터로 글을 쓸 때보다 손으로 직접 쓸 때 더 높은 품질의 글을 작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p> <p>에디스 코완 대학교의 교육학 선임 강사 아나벨라 말피크 씨는 이 현상의 원인으로 키보드 타이핑 자동화 능력의 부재를 꼽았다. 그는 "키보드에서 글자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정작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읽기, 쓰기, 수학을 명시적으로 가르치듯이, 기본적인 컴퓨터 기술도 별도의 교육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p> <p>이 문제는 NAPLAN 시험 결과와도 맞닿아 있다. 2022년부터 5학년, 7학년, 9학년 학생들은 NAPLAN 시험을 컴퓨터로 치르게 됐으며, 3학년만 여전히 필기 방식으로 응시한다. 올해 결과를 보면, 3학년에서 '우수' 또는 '탁월' 등급을 받은 학생 비율이 77% 이상이었지만, 5학년에서는 67%로 떨어졌고 이후 학년이 올라갈수록 계속 하락해 9학년에서는 61%를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쳤다.</p> <p>NSW주 교육부 장관 프루 카는 이 같은 결과를 주목하며, 연방 교육부에 NAPLAN 쓰기 영역을 모든 학년에서 다시 필기 방식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컴퓨터 기반 시험이 학교들이 기술을 교육에 통합하는 시기와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기술 도입 시기는 각 학교 교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p> <p>하지만 말피크 씨는 설령 시험 방식이 바뀐다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가 실시한 두 차례의 전국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들은 컴퓨터 기반 쓰기보다 종이 기반 쓰기 교육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컴퓨터 기반 쓰기 교육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거나, 학교 내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 꼽혔다.</p> <p>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인지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 전문가들도 펜과 종이를 사용하는 것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반면 컴퓨터 기반 쓰기가 아이들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말피크 씨는 "쓰기 발달의 각 단계를 살펴보는 발달 연구가 부족하다"고 말했다.</p> <p>록우드 씨는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교육 현장에서 비공식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괴리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결정했다면, 그에 맞는 전용 공간과 전담 교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기기를 쥐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p>